기하학 교과서에서는 플라톤 입체에 이어서 구체가 나오겠지만 우리가 보게 될 구는 실제로 그 도형보다는 공과 더 관계가 깊다. 물론 미식 축구공 같은 예외도 있지만 공 자체가 바로 구의 형태를 갖고 있다. 공 패러다임에서는 구 형태에 대해서도 개관해 보고, 감거나 말면 공 모양이 되는 다른 형태들도 살펴보려 한다. '공 ball' 은 언어적, 형태적 측면에서 모두 구가 함축하는 것을 넘어서는 다양한 물건들을 지칭한다. 공이라는 것은 던지고 잡을 수 있으며, 튀기고 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. 우리 눈은 공 모양으로 생겨서 안구 속에서 자유롭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. 공은 어느 방향으로든 쉽사리 움직일 수 있어서, 볼 베
어링 안에 있는 볼(공)도 베어링이 쉽게 움직이도록 해준다. 공을 어떤 통로 속에 넣으면 움직임의 방향이 제한되기 때문에, 파일캐비닛 서랍(직선형)이나 회전쟁반(순환형), 또는 자전거 바퀴축(원주형) 같은 것이 쉽게 움직이게 제작할 수 있다. 그 외 처음에는 공모양이 아니었던 것을 공 형상으로 만들 때 나타나는 공 패러다임은 특히 흥미롭다. 이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, 바로 인간의 신체로부터 시작해보자. 공이 굴러다닐 수 있는 것은 그 형태에 잡거나 지지할 수 있도록 밖으로 돌출된 부위가 없기 때문이다. 결국 우리 몸에 돌출된 팔이나 다리 같은 것도 몸에 붙여서 구부리거나 머리를 감싸서 공 모양으로 만들면, 부상이나 추위같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. 우리는 공처럼 구부린 상태로 삶을 시작했는데 그런 모양이 자궁 속에 쉽게 들어맞기 때문이다. 다이버들은 뛰어오를 때 회전관성을 최소화시켜 속도를 더 빠르게 하기 위해 공 모양으로 자세를 취한다. 또한, 비행기 충돌에 대비할 때도 공처럼 웅크린다. 공처럼 생긴 제품은 운동경기용 공이나 볼 베어링을 넘어서 뭔가 품을 수 있는 구조 내에 공을 넣어 사용하는 것까지 합쳐 보면 광범위해진다. 구체 관절은 사무용 펜 홀더와 같이 자유로이 움직여야 할 부품을 연결시키는 데 사용된다. 소켓 내부에서 돌아가는 공은 회전식 방향제나 볼펜의 촉 같은 것에서 액체를 배출시키는 데도 사용된다. 가구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소켓 안에 자유 회전하는 공을 넣은 가구용 바퀴도 있다. 공 형상으로 모양 바꾸기를 이용하는 생물로 공벌레가 있다. 공벌레의 영어 이름은 pill bug(알약 충) 이지만 이 조그만 동물은 곤충이라기보다는 등각류의 일종이다. 새우의 먼 친척으로 물 바깥에서 살아가는 갑각류다. 건드리면 공벌레는 완벽한 공에 가깝게 몸을 말아서 딱딱한 껍질을 밖으로 하여 여러 목적을 달성한다. 공 모양이 되면 부드러운 배 부분과 다리를 보호하고, 포식자를 피할 수 있게 구를 수 있다. 아르마딜로도 이렇게 공 모양으로 몸을 말아 작지만 딱딱한 갑주를 드러나게 한다. 고슴도치도 위험한 상황에서 공 모양으로 몸을 말고, 갑주 대신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보호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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